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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대겁(大劫) 십이천마의 난

대저 무림이란 곳이 있어 수많은 군웅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니 무릇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창천에 먹구름 가득하고 대지에는 도검과 창칼이 난무하여 도처에 해악을 일삼는 무리들이 난립하였다. 이에 더하여 천지에 요사스러운 기운이 뒤덮이고 세상을 속이고 백성들의 이목을 홀리는 사특한 무리가 곳곳에 뿌리를 심자 천하정세는 곧 근심에 휩싸이게 되었다. 식자들은 이를 어지러운 시대, 난세(亂世)라 명명하였다. 이들의 근심은 나날이 깊어졌고, 결국 날마다 정화수를 올리고 그 앞에서 무림의 암운을 걷어낼 광명이 찬란해지길 기원하였다.
때는 명(明)이 중원에 깃발을 꽂은 홍무제 때의 세상이었다. 홍무제는 곧 주원장을 일컬음이라. 그는 무리를 이끌고 난세를 평정하는 듯 보였다. 허나 주원장의 굳센 저력과 패기도 무림까지 뻗지는 못하고 금릉의 터전에서만 유효한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정이 새로 열렸으니 그 내부를 다스리는 것과 외침을 막아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만으로도 주원장의 심력은 하루가 다르게 고갈되고 있었다. 고로 무림의 난세를 평정할 여력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다.
주원장에게 밀려난 무리들은 무림으로 스며들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천천히 그리고 은밀히… 나라의 힘이 미치지 않는 무림으로 사특함을 전이시킨 것이다. 평정되지 못한 난세에 사특함까지. 이러한 이유로 무림은 나날이 살이 빠져 말라비틀어져 갔고, 종국에는 피죽도 얻어먹지 못한 비렁뱅이처럼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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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는 존경과 숭배를 받는 세력들이 있었다. 팔백 여 정도문파를 아우르는 아홉 개의 하늘, 구중천(九重天)이 대표적이었다. 인도의 고승 달마(達磨)가 무려 구년을 면벽하여 남겼다는 역근경과 세수경의 무공으로 무림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사(少林寺), 높디높은 세 봉우리보다 더 웅장한 기상을 지닌 검선(劍仙) 삼봉도인 문하 남존 무당(武當)은 더 이상 난세를 좌시할 수 없었다. 소림과 무당에 이어 화산(華山), 청성(靑城), 아미(娥媚) 등 구대문파가 힘을 더하여 기치를 세웠다.
속세와 단절된 삶을 살며 자기수양에 정진하던 구대문파가 불경과 도경을 내던지고 무림에 관여한 것은 뭍 기인들의 가슴을 진탕시켰다. 뜻 있는 기인들과 은자들이 산을 떠나 속속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이는 천하무림맹(天下武林盟)의 반석이 되었다. 이어, 수많은 무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가슴에 뜨거운 충정을 담고 천하무림맹의 본원이 있는 호광성 장사로 발걸음을 향했다. 마치 아직 암운이 걷히지 않은 무림의 하늘을 푸르게 할 것처럼…
천하무림맹의 수뇌부와 장로원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림정세를 논했다. 이들은 진정을 다해 난세를 척결하는 일에 매진했다. 천하무림맹에 소속된 무인들도 제 한 몸 불태우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늘이 이들의 노력에 감화한 것일까?
우후죽순처럼 돋아났던 요사하고 사특한 무리들이 하나 둘 천하무림맹의 의로움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일견하기에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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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밤하늘에 열두 개의 성좌(星座)가 홀연히 모습을 나타냈다.
오오―
휘황찬란하게 빛을 뿌리는 신성한 별빛이여!
그 빛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십이성좌를 보며 드디어 난세가 평정되었으며 이제는 평화의 시대가 다가온다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하늘에 제를 올렸다. 하지만…
훗날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성급한 축포였다. 사람들이 하늘의 축전이라며 반겼던 십이성좌가 돌연 붉게 타오르며 밤하늘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것이다. 웃고 떠들며 즐기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현상을 보고 불안에 떨었다. 눈을 씻고 하늘을 재차 살폈지만 찬란하게 빛나던 십이성좌를 결코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십이성좌는 유성이 되어 천하각지로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 장엄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으리라! 나는… 오늘 당장 눈이 멀어도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오오!”
과연 이것은 무슨 징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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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
한데 사람들은 웃는 얼굴이 되어 북을 치기 시작했고 비파를 튕겼다. 이들의 생각은 이러했다. 십이성좌가 천하 곳곳으로 떨어졌으니 이는 사방에서 영웅이 태어날 것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곧 난세의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고 오로지 평화만이 이 땅 위에 만연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제 십이성좌의 기운을 받은 열두 명의 영웅이 태어나 성장하고,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계속하여 이어가 주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의 시대는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종전의 암운보다 더 어두운 암흑의 시대, 곧 파멸이라 불리는 혼세(混世)로 통하는 길목이었음을 사람들은 그 당시에 알지 못했다.

평화가 주는 안락에 중독되어 모두의 마음에 안일이 둥지를 트고 태평성대(太平聖代)라는 네 글자로 세상이 정의될 때, 그들이 나타났다.
십이성좌의 기운을 타고난 열두 명.
사람들이 바라던 영웅이 아닌, 지옥의 문을 부수고 지상으로 올라온 마귀들이…
시작은 산동성 태산검파(泰山劍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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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중원을 지배했던 제왕들이 봉선의식(封禪儀式)을 행하였던 동악, 태산 제일봉에 즐비했던 고루거각들이 폭삭 주저앉았다. 태산검파 제자들은 물론 스승이며 장로, 장문진인까지 모두 수급이 잘려 바닥을 애처롭게 뒹굴고 있었다. 두 눈은 억울함에 치떠져 세상에 대한 미련을 남기고 있었으며 목이 잘려나간 틈으로 흘러나온 피가 굳어 마치 팔십 노인의 얼굴에 핀 검버섯처럼 연무장 바닥을 도배하고 있었다.
태산검파의 참혹한 괴멸의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어느 약초꾼이었다. 그는 십 수 년 전부터 태산검파의 약당(藥堂)에 약초를 납품하던 자로 그날은 운이 좋아 십년 근 삼(蔘)을 두 뿌리나 캔 날이었다. 싱긋빙긋한 얼굴로 태산검파 산문을 찾았지만 그를 반긴 것은 안면을 튼 지 얼마 안 된 약관(弱冠) 젊의 제자의 앳된 목소리가 아닌 공포를 잔뜩 집어먹은 채 목이 잘려 죽어있는 몸통 없는 머리였다. 약초꾼은 사색이 된 얼굴로 줄행랑을 쳤는데, 얼마 달리지 않아 생각을 고쳐먹고 천하무림맹 지부(支部)로 달음박질쳤다.
약초꾼에게 태산검파에 발생한 비보(悲報)를 전해들은 천하무림맹 산동 제남지부장, 옥수신검(玉手神劍) 소진우(邵震宇)는 호광 장사로 급보를 보내는 동시에 중무장한 수하들을 이끌고 태산을 올랐다. 산문에 다다른 소진우는 놀라운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산동에서 제일의 성세를 주도하던 태산검파에 죽음의 그늘이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시신들이 도처에 깔려 있어 마치 커다란 무덤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소진우는 싸늘하게 식은 시신을 살피면서 또 다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목이 잘린 시신에 난 상흔들은 모두 일정하여 도저히 믿지 못할 하나의 사실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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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통재로다! 한 사람…… 단 한 사람이 태산검파의 모든 제자들을 몰살시켰단 말인가? 이것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칼에 미친 마귀가 나타난 것이야!”
칼에 미친 마귀…
검마(劍魔).
놀랍게도 단신으로 산동제일문파 태산검파를, 그것도 태산검파가 자신하는 검으로 몰살시킨 장본인. 칼에 미친 귀신, 곧 맹안(盲眼)의 검마는 천하무림맹 산동지부장 옥수신검 소진우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그의 첫 행보는 무림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으며 이어지는 충격적인 사건의 전초로써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태산검파의 괴멸이 주는 경악과 충격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무림에 또 다른 마귀들이 나타났다.
아아―
그들은 말 그대로 마귀들이었다.

시(屍)… 산(山)… 혈(血)… 해(海)…
마귀들이 나타난 곳은 어김없이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의 명(命)을 빼앗을 것처럼 죽이고 또 죽이는 천살(天殺)의 길을 걸었다.
이렇게 더 짙은 암운이 무림의 하늘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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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안휘(安徽)에서 상당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남궁세가(南宮世家)가 분연히 의검(義劍)을 뽑아들었다. 비록 천하무림맹의 구대문파보다 전통적인 면에서 밀리는 오대세가 가운데 하나인 남궁세가였으나 그들의 의기만큼은 구대문파에 못지않았다. 그들이 검의 들자 사람들은 모두 남궁세가를 칭송했고 열둘의 마귀를 처단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남궁 씨를 쓰는 자들은 열두 명의 마귀들을 처단하기 위해 천하 각지로 흩어질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안휘를 벗어날 운명이 아니었다. 출정 전날, 그들은 마귀의 방문을 받았고 황산(黃山)의 음영 아래 남궁세가의 씨가 말랐다. 마귀들은 태산검파보다 더욱 잔혹한 멸문으로 남궁세가라는 이름을 무림에서 지워버렸다.
그제야 사람들은 일의 중대차함을 알게 되었다. 태산검파에 이어 비상을 위해 욱일승천하던 남궁세가마저 마귀의 광기 아래 티끌이 되어 사라졌으니 더 이상 경악만 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천하무림맹을 중심으로 과거 암운을 거둬냈던 기인들이 다시금 모였다. 이들은 열둘의 마귀를 징치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고, 최고의 기재(奇才)들로 구성된 무력전투부대를 조직함으로써 그들과의 전쟁을 준비했다.
하지만 마귀들이 한 걸음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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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림맹 수뇌부가 무력전투부대를 조직했을 즈음 이들은 이미 소림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소림방장을 비롯한 금강무승들이 대부분 천하무림맹으로 향한 터라 소림사는 무주공산(無主空山)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나마 나한당 무승들은 아직 경내에 남아 있었기에 무릇 방어에 있어 최고봉이라는 백팔나한대진(百八羅漢大陣)으로 대항하였지만 오히려 최초의 패배를 기록하며 장경각과 대웅보전이 불타올랐다. 이어 무당 검수들의 송문고검이 부러졌고 삼재오행칠성구궁의 진법도 철저하게 무너졌다. 결국 무당 대조들의 위패를 모셔두었던 조사전과 장문진인의 거처 자소궁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양대 거장이던 소림과 무당이 무너지자 구대문파는 연이어 패퇴를 거듭했다. 그들은 도저히 열두 명의 마귀들을 막을 수 없었다. 마귀들의 힘은 괴이하고 사악했으며 요사스럽고 악랄하였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괴공 앞에 구대문파는 무너져 갈 뿐이었다. 더구나 평화의 시대 동안 강한 문파들에 눌려 소외받던 떠돌이 무인들이 대거 마귀들의 휘하로 모여들면서 마귀들은 수천이 넘는 추종자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결국 이미 멸문한 남궁세가를 제외한 무림오대세가 중 네 곳까지 크나큰 상처를 입고 물러섰다. 급기야 천하무림맹은 물론 그 어떤 정도문파들도 열둘의 마귀들과 대적할 수 없을 지경까지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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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명의 마귀는 이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천하무림맹을 십년 이상 퇴보시켜버린 이 마귀들의 눈은 또 다른 살육의 대지로 향했다. 그들의 미쳐버린 눈에 또 다른 제물들이 보였는데, 바로 사도문파들이었다. 천하무림맹의 눈을 피해 음지에서 암약하던 그들이었지만 결단코 피 냄새 민감한 마귀들의 이목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사도문파의 중심 격인 녹림칠십이채(綠林七十二寨)와 장강수로연맹(長江水路聯盟)이 열두 명의 마귀의 잔혹함 속에 산과 강에서 연이어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어 천여 개의 사도문파들이 마귀들의 이빨에 사정없이 물어 뜯겼다. 게다가 그 이름만 들어도 삼일 밤낮을 공포에 젖어 떨어야 한다는 철옹의 마교(魔敎)가 열두 마귀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패배하였을 때는 더 이상 무림에 희망이란 두 글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천하무림맹에 이어 녹림과 장강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마교까지 마귀들의 광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쓰러졌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런 생각을 했다.

파(破)… 멸(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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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탄생 후 최고의 겁난(劫亂)
천하무림맹을 시작으로 사도문파와 천년마교까지 이들 열두 마귀의 천하를 향한 살인행로를 막지 못했다. 암운은 더 짙어지고 태양마저 서산으로 숨어 다시 떠오르지 않으니 사람들은 이를 열두 명의 마귀가 일으킨 난이라 하여…
혈우광풍 혼세무림(血雨狂風 混世武林).
십이천마지란 (十二天魔之亂)!
줄여서 십이천마의 난이라 불렀다.
아아―
난세가 평정된 지 몇 해가 흘렀다고 또 다시 무림에 혼돈이 찾아온단 말인가?
무릇 무림이란 곳은 보보(步步)마다 도검과 창칼이 어지럽게 춤추고 처절한 비명과 갈기갈기 찢긴 피륙의 잔해만이 나뒹구는 곳이란 말인가?
언제 어디서든지 무슨 사단이 벌어질지 모르는 요지경(瑤池鏡) 속이란 말인가?
정녕 평화의 시대는 이렇게 끝나는가?
혼돈을 정리할 구세주(救世主), 십이천마의 마수에서 무림을 구할 진정한 영웅은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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